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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박물관 - 라파엘로의 방과 시스티나 소성당

2011.7.24 - 8.6 유럽/이탈리아 - 로마

by [6D]우르릉쾅쾅 2012. 1. 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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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촛대의 방'으로 들어섭니다.

아름다운 천장화들이 압권인 곳입니다.






 


이어지는 '아라찌의 방'입니다.

이곳은 두꺼운 실로 직조하여 그림을 그린 작품을 전시해 놓은 방입니다.



 


조각을 했다고 생각될 만큼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사실 그림이라는 말을 깅가밍가 하며 저건 조각이겠지 저건 조각이겠지 하고 있었습니다. ㅋㅋ



그러다 아! 저건 확실히 조각이다! 하고 달려가봤습니다만



진짜 그림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탄합니다.



너무나도 화려하고 멋진 '지도의 방'입니다.

황금빛 천장이 압권인데요.

교황이 지배하는 성당 40개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그린 지도를 통해 당시 역사와 지도 작성법을 볼수 있습니다.








이 지도가 80% 이상의 정확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라파엘로의 방' 입니다.

'라파엘로의 방'은 교황 율리우스 2세를 위해 만든 방으로 당시 20대였던 라파엘로에게 율리우스 2세는 기존의 자신의 방 4개에 있는 그림을 모두 지우고 다시 그리라고 명했습니다.

기존 그림은 라파엘로의 스승이였던 페루지노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이였는데 말이죠.

그 만큼 라파엘로가 얼마나 뛰어난 예술가였는지 말해주는 역사겠죠?

라파엘로의 방은'서명의 방(1505년~1512년)' '엘리오도르의 방(1512년~1514년)''보르고 화재의 방(1514년~1517년)''콘스탄티누스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콘스탄티누스의 방을 그리다 1520년에 사망했고 나머지는 그의 제자들이 완성했다고 합니다.



맨첨으로 '콘스탄티누스의 방' 부터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승리'

그리스 신들 즉 이교도의 상징이 처참하게 바닥에 깨어져 있고 십자가가 빛나고 있는 그림이네요.

두번째의 '엘로오도르의 방'은... 패쓰 ㅠ

그리고 세번째의 방 '서명의 방' 입니다.

서명의 방는 유명한 '아테네의 학당'이 있는 방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이 바로 '아테네의 학당' 이죠!

산피에트로 대성당을 떠올리게 하는 학당에서 신학 철학 수학 예술 등을 대표하는 54명의 학자가 모여 토론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학자들도 많이 있는데요.

우선 잘 안보이지만 오른쪽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이 바로 이 그림을 그린 라파엘로 입니다. 

유명한 작가들은 대작중에 본인을 그려넣는 경우가 많은데요. 특히 본인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라파엘로 옆에 수염이 긴 갈색 모자를 쓴 사람은 조로아스터. 허리를 구부린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은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수학자 유클리드 입니다.

그리고 정면 가운데 두 사람이 보이죠? 왼쪽 빨간옷이 플라톤 오른쪽 파란 옷이 아리스토텔레스 입니다

플라톤 왼쪽에 겨자색 옷을 입은 사람은 소크라테스 입니다.플라톤의 스승이기도 하죠.

그리고 중앙 하단 팔로 턱을 괴고 있는 사람이 미켈란젤로 입니다. 라파엘로가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보고 난 후 그의 팬이 되어 미켈란젤로를 추후에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 원본에는 미켈란젤로가 이 그림에 없었다고 하네요.

미켈란젤로 왼쪽, 책에 열심히 무언가를 쓰는 사람은 피타고라스 입니다. 마지막으로 미켈란젤로와 피타고라스 가운데 흰옷을 입은 여자는 라파엘로가 사랑했던 여인입니다.

신분의 차이로 결혼은 하지 못하고 짧은 라파엘로의 생애동안 무척이나 사랑했던 여인이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보르고 화재의 방'입니다.


'샤를마뉴 대제의 대관'이란 그림입니다.





'보르고의 화재'

성베드로 성당 근처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교황의 기도로 불이 진화 되어 사람들을 구하고 성베드로 성당 또한 무사했다고 합니다.


 
이제 이어지는 메인 목표인 시스티나 소성당을 향해가고 있는데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동상이 나타납니다.

이 동상을 주물로 부었기 때문에 여러곳에 있는데요. 통상적으로 7번까지 부은 것은 진품으로 인정한다고 하며 이 동상도 진품이라고 하네요.




이제 시스티나 소성당으로 들어가기전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한 후!





시스티나 성당(capella sistina)

1473~1484년 교황 식스투스 4세가 니콜라우스 3세 시대의 성당자리에 다시 지은 성당이다.

사방에 미켈란젤로, 기를란다요, 페루지노, 보티첼리등 르네상스시대의 거장들의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성당내의 모든 그림은 프레스코화 이기때문에 소음과 진동은 치명적이다. 그래서 그렇게 정숙하라고 권고하고 사진촬영은 엄격히 금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시스티나 성당은 오늘날 전 세계의 추기경이 모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장소로 쓰이고 있다.

 ※교황선거 콘클라베(Conclave) : 교황선거 콘클라베는 원래 '열쇠로 잠근다'는 뜻으로 유폐당한 교황선거장을 말하는데  시스티나 소성당에서 진행된다. 

                                                콘클라베는 교황이 서거한 후, 15일 안에 열리며 철저한 비밀투표로 진행된다고 한다.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


제단 뒤 벽면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은 1541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미켈란젤로가 교황 바오로 3세에게 위임받아 제작한 프레스코화입니다.

이 작품은 말이 많았으나 당시의 종교 개혁의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 민중의 신앙을 굳건히 하려는 의도에서  그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 이 그림이 공개 되었을 때 많은 비난을 받았던 것은 그림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나체로 그려졌기 때문이라고 힙니다.

또 하나 절묘한 것은 벽화를 등지고 교황의 제단에 서면 그 뒤 보트 위의 악마가 마치 제단 앞에 서 있는 교황을 향해 막대기를 휘두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많은 논쟁과 논란 끝에 1563년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수정작업이 시작되었는데 미켈란젤로의 제자 볼테라에 의해 그림 속 등장인물의 주요부분을 가리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볼테라에게 '기저귀 채우는 사람' 이라는 애칭이 붙기도 하였답니다



원래 이곳은 촬영이 금지된 곳입니다만 몰래 한장 찍었습니다. 원래 저도 얌전히 있으려고 했는데 다들 몰래몰래 한장씩 열심히 찍고 있더군요.

뭔가 손해보는 기분이 들어 한장 몰래 찍어봤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시스티나 성당을 장식할 그림을 제의한 사람은 율리우스 2세로 맨처음 의뢰한 화가는 브라만테 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브라만테는 건강상의 이유로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미켈란젤로를 교황에게 추천해다.

이유는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미켈란젤로라 하더라도 이 방 전체를 꾸미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그의 생각대로 미켈란젤로가 실패하면 그의 제자인 라파엘로의 입지가 더욱 단단해 질 것이라고 판단해서라고 한다.

허지만 미켈란젤로는 그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늘날 까지도 최고의 작품이라고 칭하는 두작품을 남겼으니

그것이 바로 '천지창조' 와 '최후의 심판'인 것이다.

 1508년부터 시작하여 1512년에 완성한 '천지창조'

중앙에 구약성서와 천지창조를 테마로 하여 9개의 주제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장면이 '아담의 창조'이다.(아래 가운데 그림)

교황과 불화로 중단하였다가 다시 시작하여 완성한 이 천장화는 미켈란젤로의 건강을 급격히 나쁘게 하였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조수도 없이 혼자 천장화를 4년동안 그렸고 천장 아래 설치된 좁은 공간에 누워서 떨어지는

프레스코화(하얀 회반죽을 발라서 회반죽이 마르기전에 염료를 넣어서 천천히 색이 스며들게 하는 벽화 방법)))의 안료를 맞으며

그림을 그려야 했기때문에 척추가 휘어 곱추처럼 되었고 눈병과 관절염에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천장화를 보고 있자면 그의 그런 노고가 고스란히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찡하더군요.

사진 안찍는척 하면서 찍은터라 제 얼굴이 나오는줄도 모르고 ㅋㅋㅋㅋ









 






아까 그 출구를 통해 빠져나왔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스위스 근위대의 예술적인 복장을 기대했었지만 요즘은 관광객으로 인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 일부는 저런 복장으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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