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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피에트로 대성당 (성베드로 대성당) 과 산탄젤로 (천사의 성)

2011.7.24 - 8.6 유럽/이탈리아 - 로마

by [6D]우르릉쾅쾅 2012. 1. 7.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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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시국 관광을 마치고 유럽관광의 끝판 대장이라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보러 왔습니다.

광장을 들어서는 곳 부터 그 규모가 심상치 않은데요.




이곳에서 드디어 기다리던 제대로 된 스위스 근위병 복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딘가 재밌어보이면서도 고풍스러워보이는 건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때문일까요.




성 베드로는 예수에게 '베드로'라는 이름과 '천국의 열쇠'를 받고 예수 이후 첫 교황이 되었습니다.

서기 90년 성베드로가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견되고 326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곳에 성베드로 대성당을 지었습니다.

16세기 율리우스2세가 건물을 완젼히 허물고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등 10명이 넘는 예술가를 참여 시켜 120년에 걸쳐 지금의 성베드로 대성당의 모습이 갖추어졌다고 합니다.





 



 


입구를 지나





 

피에타(Pieta)상


성베드로 대성당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 입니다.

그냥 넘어가셔도 될 설명을 좀 붙이자면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상은 1. 다비드상  2. 피에타상 3.  모세상이 있습니다.

세 작품 모두 유명하지만 피에타상이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 중에서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Pieta(피에타)는 라틴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인데요.

성화나 조각에서는 보통 "십자가에 못이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성모마리아께서 안고 계신 모습"을 의미하며

비록 자식의 죽음로 슬프지만 그 또한 하느님의 뜻임을 알고 순종했던 마리아의 경건한 믿음을 일깨워주는 내용입니다.


1. 유일하게 미켈란젤로의 이름이 새겨진 조각

1496년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첫번째 작품인 바쿠스를 보고 능력을 알아본 프랑스 추기경으로부터 요청을 받아 3년간의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는 직접 알프스의 최고의 대리석을 구해 600만번 이상 가죽으로 문질러 반짝반짝 윤기가 나게 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지만

지불대금은 오지 않고 형편은 극도로 어려워져서 조각상도 겨우 완성하게 됩니다.

지불도 하지 않은 곳에 가져다주기도 싫고 그렇다고 작품을 가지고 있을 수도 없었던 미켈란젤로는 조각가로써의

허탈함을 느끼며
자신의 조각을 아무도 몰래 성당안에 놓고 오게 되지요.

그런데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조각을 본 후 칭찬하기 시작했는데 그만 다른 조각가의 작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이에 억울함을 느꼈던 미켈란젤로는 아무도 없는 밤 피에타 상에 아래처럼 글귀를 새겨놓습니다.

"MICHEL. AGELVS. BONAROTVS. FLORENT. FACIEBAT"

동명이인도 있으니 헷갈리지 않게 "피렌체에서 온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라고 직접 써 넣은 것이지요.

 물론 그 후 미켈란젤로는 만물을 만든 하느님도 그 어떤 창조물에도 자신의 이름을 넣지 않았음을 인식

자신의 오만함을 후회하며 그 이후에는 어떠한 작품에도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2. 가장 아름다운 구도  

마리아는 예수를 오른쪽팔로 감싸 자신의 쪽으로 당기며 하느님을 부르는 듯한 포즈를 짓고 있습니다.

성모마리아님 역시 정 가운데가 있는 것이 아닌 약간 왼쪽으로 기울여져서 오른쪽에 큰 무게중심을 가지고 있는 예수와 균형이 맞습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에선 축 늘어진 예수님의 몸이 우선 사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는 조각상 오른쪽단을 10cm 높게 하여 마리아의 오른쪽 다리가 올라감과 동시에 예수의 몸도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듯한 느낌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때문에 예수의 힘이 빠진 팔의 느낌이 더 강조되어 보입니다.

또한 미켈란젤로는 마리아의 차마자락을 섬세하게 조각함으로써 비대칭적인 제단의 느낌을 커버하고 예수의 몸을 감싸는 듯한 느낌을 자연스럽게 살렸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삼각형 구도로 움직이고 있는 찰나를 포착한 느낌이나 안정적으로 느껴집니다.

 또한 정면만이 아닌 '하늘이 보시기에 합당한' 즉 하느님의 시선에도 그 균형감은 완벽합니다. 

물론 마리아가 다리를 벌린 자세를 가지고 이단이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지만

벌린 다리사이의 풍성한 치마 주름과 예수의 신체가 마리아의 마리에서 걸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3. 사실적이고 합당한 표현

 성모마리아와 예수를 비교하면 먼저 예수의 신체가 윤기있게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을 눈치채실 겁니다.

가장 좋은 대리석을 사용해서 그렇구요. 십자가에 못박힌 다리의 섬세한 근육마져 표현하였습니다.

예수의 몸통을 잡은 마리아의 손가락과 손에 의해 눌려서 올라온 예수의 겨드랑이 등은 과연 돌을 망치로 내려쳐서 한 조각이 맞는가 하는 의심을 들게 합니다.

 또한 마리아의 얼굴은 온화하면서도 고개를 약간 숙여 아래를 보고 있는 젊은 여자의 얼굴입니다.

당시에는 마리아의 얼굴을 젊은 여자로 했다고 하며 문제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미켈란젤로는 영원하신 성모마리아의 얼굴 역시 처음 그대로인 것이다라고 말해서 논란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얼굴 또한 우리가 보통 아래에서 올려다 보았을 때는 약간의 고된고 힘든표정처럼 보입니다만 위에서 봤을 때는 꼭 평화롭게 잠든 것처럼 보이니 더욱 놀라울 따름입니다.


4. 관광객과 멀어지다.

이런 피에타 상에 수난이 발생한 때가 있었으니 1972년 5월. 어느정신병자가 성모마리아가 악마라며 망치로 내려친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때 성모마리아의 눈과 코는 물론 한쪽 팔이 떨어지는 대형참사가 일어났었죠.

 바티칸에서는 처음에는 그냥 두려고 했으나 보수를 하기로 결정 6개월만에 돌아온 피에타상은 결국 방탄유리안에 보호되어 관람객으로부터는 더욱 더 멀어졌습니다.


 






호화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ㄷㄷㄷ




저 멀리 보이는 발다키노 앞에서 먼가 분위기가 멋져보여 찍어본 사진.




나를 믿고 따르라~






'발다키노'

교황의 제단으로 오직 교황만이 미사를 집전할수 있는 곳입니다.

산 피에트로 광장을 설계한 베르니니의 대표작으로 높이가 29미터에 이릅니다.

그러나 이 발다키노가 바로 그 판테온에 붙어 있는 청동판을 뜯어 만든 그 작품이고 이로이해 당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래부분에는 은으로 된 작은 상자가 있는데 이곳은 성베드로의 유골함 입니다.




잘 안나왔지만 가운데에 빛이 들어오는 곳 바로 아래에 청동의자가 있습니다.

그것이 '사도 베드로의 성좌'라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바티칸 박물관 PINACOTECA 에서 봤었던 '그리스도의 변용'이라는 작품인데 아마 모조품인것 같습니다.




'교황 비오 8세 기념무덤'













내부가 너무 어두워서 고 iso 촬영을 했더니 화질이 영 별로네요 ㅠ

어쨌거나 성베드로 대성당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옵니다.






베르니니가 설계한 성베드로 광장을 배경으로 한컷 남깁니다.




미켈란젤로의 근위복을 입은 스위스 근위대가 다시 보이네요.






성베드로 광장


성 베드로 광장의 설계자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이다.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을 설계하면서, 가톨릭교회가 그곳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있다는 뜻을 전하고자 했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을 머리로 두고, 반원형의 회랑 두 개를 팔로 묘사함으로써 성 베드로 대성전이 두 팔을 벌려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성 베드로 광장 양편에 각각 네 줄로 늘어선 토스카나식 기둥 284개와 벽에서 돌출된 기둥 88개로 이루어진 베르니니의 회랑은 1656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667년에 완공되었다.

16m 높이의 원기둥꼴 대리석 기둥 위에 있는 140개의 성인상은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조각한 것이다.















아까 거기가 낫네요 ㅋㅋ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산탄젤로(천사의 성)으로 가는길입니다.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사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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